잠깐 자고 있던 사이에 현실에서는 조광래 (전) 국대 감독 전격 경질되었다고 합니다. 자다 깨서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지인의 담벼락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일쯤 되어야 이제 자세한 정황이 언론을 타고 퍼지겠지만 말이죠. 저는 일단 석연치 않은 경질 과정에는 반대고... 경질 타이밍에는... 처음에는 찬성이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가 있네요. 지금 새 감독을 계약하면 2014 월드컵까지 기간을 잡을 텐데, 월드컵을 생각하고 철학있고 비전있는 감독을 데려와야 하는데 데뷔전이 이렇게 부담스러운 경기라서 누가 이 부담을 지려고 할지...
첫째로 경질 배경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하자면, 기본적으로는 레바논 전에서 패하면서 월드컵 진출이 간당간당해졌다는 현 상황이 기본적 배경이고, 지금 나오고 있는 국가대표 스폰서의 압력설과 축구계의 야권이었던 조광래 감독과 그간 축구계의 진정한 파워맨이었던 이회택 전 기술위원장의 대립설... 황보관 대표팀 기술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인정했죠... 하아... 스폰서가 협회 자금에 관여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적 축구의 부분에 관여를 하다니... 아 싫습니다. 지금 여론이 들고 일어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싹 개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조광래 감독의 경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은 좋은 전략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완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야 뻔하지만 만화축구가 불가능하기만 한 이상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조광래의 축구가 아시안컵에서 선전하고 세르비아와 가나를 연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호하기도 했습니다. 단점은 4-1-2-3 전술 하나만으로 주구장창 밀어붙이고, 그 안에서의 역할 및 선수가 너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이는 아마 색다른 만화축구를 소화할 정도의 전술적 이해가 된 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측) 전술이 읽히기 쉬웠고, 전술이 먹히는 날에는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전술이 읽히거나 상대가 한국보다 기술이 더 좋은 경우에는 철저하게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첫 전술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플랜 B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축구에서 모든 상황에 다 통하는 전술이란 어디에도 없으니까 말이죠. 허정무 감독도 남아공 월드컵에서 4-4-2와 4-2-3-1이라는 두가지 전술을 상황에 따라 운용했었죠.(염기훈 시프트)
더욱이 이 과정에서 해외파 선수에 대한 지나친 믿음을 가지고 중용했고, 그 결과 K리그의 수많은 스타 선수들이 조광래 대표팀에서 사실상 굴욕을 당하다시피 했습니다.(이동국, 유병수, 염기훈, 한상운, 이재성, 김재성, 김정우... 일일이 열거하자니 진짜 많았네요.) 대표팀내 국내 선수들의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K리그 출신 감독임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풀백 실험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래 조광래 감독은 안양 감독 시절부터 스트라이커를 풀백으로 놓고 경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습니다. 정조국도 풀백 자리에서 뛴 적이 있을 정도지요. 언제 인터뷰를 봤는데(아마도 포포투), 조광래 감독은 풀백은 공격과 수비, 타이밍과 기술, 체력 등이 골고루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타 포지션의 선수가 풀백을 해 보면서 배울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공감가는 이야기죠. 그런데... 하지만 그것은 클럽팀 감독이 할 만한 행동이지 대표팀 감독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히딩크 시절처럼 대표팀이 몇백일씩 합숙하면서 팀을 감독 입맛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경기를 소화하는 와중에 몸에 맞지 않는 자리에서 뛰면서 욕먹는 것은 정작 선수 아니었습니까.(이재성, 김재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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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제 감독은 잘렸기 때문에, 후임 감독을 물색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왕 외국인 감독을 데려올 거라면 명성 있고 경력 있고 철학 있는 감독이어야 합니다. 물론 축구협회가 새 감독에 엄청난 돈을 들일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트비처럼 단순히 한국을 잘 안다는 이유로 데려올 바에야 차라리 한국에 넘쳐나는 신태용, 안익수, 최강희 감독 등 좋은 국내 지도자들을 대표팀 감독에 올리는 것이 훨씬 똑똑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트비는 좋은 분석관이었고 좋은 코치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전혀 검증된 바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 감독을 못한다고 잘랐는데 새 감독은 더 좋은 감독을 데려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 대표팀에 필요한 감독은 중동 축구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 세계 전술 흐름에 빠삭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어차피 새 감독의 계약기간은 월드컵에 맞춰져 있을 테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한국적 축구의 강점을 세계적 추세와 조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까요. 일단 지켜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 답답합니다.
ps. 잠에서 깨어서 기사를 보고 경악한 다음에 급히 적었는데, 일단 기본적 정황이 나온 뒤에 내용을 살짝 수정했습니다.